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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란 누구인가?




   이 질문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 라는 질문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 머리 아픈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비웃음을 살만한 주제일지도 모른다.

모호한 세상이다. 정의란 무엇인지 궁금해서 하버드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강의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지만 그 책을 끝까지 완독 했다는 사람은 드물다는 요즘이다. 그야 말로 모든 것이 소비 되고 흥미로 흘러가고 정의를 정의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창작 작업. 즉 예술이란 현대 미술, 개념 미술을 거쳐 모든 것이 예술화 될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술인이오! 하고 사는 사람들 보다 창작 작업과 전혀 연관 없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예술로 추앙 받을 수도 있는 세상이다.  반대로 아주 유명한 아티스트나 거장의 작업물이 오히려 식상하고 이해하기 난해한 경우도 허다하다. 관객들의 입을 빌려 “ 그래서 어쩌라고” 와 같은 작업들 말이다. 

어쩌면 이제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순수성이니, 전업을 하니 라는 에도시대 사무라이 같은 스타일은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예술이 뭔가 대단한 것 처럼 여겨지던 과거와 달리 예술이라는 것 조차도 소비 컨텐츠의 한 분야로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업자들은 이러한 부분들을 인지 하지도 못할 뿐더러 이 사실을 수용할 자세도 미흡한 경우가 많다. 

이 글은 나 또한 20대의 고민하는 창작자로서 그 동안 만나고 지켜본 작업자들의 개인적인 성향과 작업 스타일에 대해 정리 하는 글이다. 

  •  구현화 작업.

 창작자의 머릿속 이미지가 구현화 되는 작업이 있다.

구현화의 작업의 경우 창작자의 생각이나 이미지가 평면이 되었든 공간이 되었든지 간에 생각하는 것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메세지를 담게 된다. 이런 작업들은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나 담론들을 뒤집거나 비틀어 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작품을 감상할 때도 생각을 하거나 끄집어 내게 하는  ‘생각 하는, 사색 하는  예술’이 된다. 또 구현화 작업은 현대 미술이라는 담론하에 생겨난지 100년도 체 되지 않았지만 예술가의 성역과도 같은 영역을 침범 당하게 되는 빌미를 만들어 주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변기가 예술 작품이 되다니. 어디 상상할 수나 있는 일이었을까 ?   하지만 생각 하나가 공감을 통해 담론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감사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특별한 생각 하나를 발견해 내기 위해 젊은 작업자들을 발굴해 내는 시장이 끊임 없이 형성 되고 그것이 소위 많은 이들이 꿈꾸는 위대한 예술가의 길로 생각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현화 작업을 하는 작업자들의 성향은 대게 터부시 여기는 것들에 대해 무신경 하거나 도전적인 성향이 강하다. 성격이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상당히 쿨해 보이는 느낌을 준다.  또한 이야기 하는 소재들이나 방식들이 비주류인 쪽으로 치중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상당히 개인적이다. 그래서 감상하는 입장에서도 참신하거나 재미 있는 것들이 많기도 하고 이런 작업들이 나아가 퍼포먼스적 성격을 띠기도 하며, 영상이나 기록 하는 방식을 가지기도 한다.  생각의 공감을 얻어야지만 시너지가 발생 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노출 되어지기를 원하기도 한다. 반면 작업자의 성향은 철저하게 관찰자적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공동 작업 보다는 개인 작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작업자들이 가지는 고민은 개념 미술이 가지는 딜레마(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고 없는지), 기존의 존재하지 않았던 기법이나 새로운 창작 매체를 찾아 내는 등 각자의 색깔을 뚜렷하게 인정 받기를 원하기도 한다. 

  • 우연성의 발견.

보통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찰나의 순간을 담아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우연성을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 칭해지며 예술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드로잉 또한 의도한 우연성을 기반으로 하는 액션 페인팅을 통한 추상적인 작업을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법에 대한 정의 일 뿐 우연성의 작업은 창작자가 밖에서 자신의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받아 들이고 대상 오브제를 창작물로 정의 하는 것으로  구현화 작업과의 차이점은 기법으로 구분 하지는 않는다. 

우연성을 주는 소재는 정의 내릴 수가 없다.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개념과는 상반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외에 직감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대상들이 창작자에게 영향을 주고 정의 내려지는 과정 속에서 이야기를 부여 받는다. 그래서  작업물을 바라보는 이들 역시 공감을 사는 것으로 작업 하게 된다. 쉽게 말해 ‘느끼는 예술’ 이 된다.  

  우연성 작업들이 가지는 주제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래서 초상 작업이나 개인의 생활상을 모티브로 표현되는 것이 많은데 이런 작업들이 쌓여 아카이브화 되면 작업자가 살아가는 당대의 문화나 생각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구현화 작업이 발명하는 작업이라면 우연성 작업은 발견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성 작업을 하는 이들의 성향은 주로 감성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문학 작품을 좋아하며 타인의 감정에 적극적으로 공감을 하고 작업을 통해 스스로뿐 아니라 타인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탐구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것에 적극적이다. 또한 개인적이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경험하거나 느끼는 것들을 모티브로 작업 하기도 한다.  이들은 또한 보통 사람과 비교 했을 때 감각적인 부분이 뛰어나 자신의 외적인 부분과 환경을 조성하는 부분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 하기도 한다. 이들은 새로운 것들을 받아 들이는 것에 저항이 없는 얼리어답터적인 성향을 띄기도 하기 때문에 감정적인 부분과 물질적인 부분 두가지를 충족하려는 욕심이 강하다. 때문에 우연성 작업을 하는 이들은 작업 자체만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삶을 즐기며 영위하는 가운데 창작 작업을 병행 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 미술가적 노동. 

가장 대중적이고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예술이라고 하면 고전적인 미술이 아닐까 한다. 쉽게 말해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재현 하는 작업을 뜻하는데 이런 작업들은 파사드적인(건축 용어로 전면에 내세우다 : 대상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방식) 작업을 뜻하기도 한다. 대상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초상 작업이나 풍경 이미지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성격 보다는 기법적인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가 아닐까 한다. 미술가적 작업들은 좋은 작업을 평가 할 때 기준을 고퀄리티성으로 평가 되어 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사실을 더욱 사실처럼 그려 내는 극사실 주의 미술을 추구 하기도 하며 보는 이들 역시 이런 작업물에 작품이라 불리우는 것이 상식 이며,  이것이 높은 가격이 책정 되어 지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개념 미술, 현대 미술이라는 것이 짧은 역사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남기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상식적인 경제 관념으로 책정 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 하나 찍어 놓고 30억을 받는 것에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대중과 작업자의 괴리감이 발생 했고 팝 아트의 등장으로  이런 부분을 잘 소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반면에 팝아트의 엄청난 확장성이 예술을 소비하고 흘려 보내는 것으로 만든 것은 재미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사람들로 하여금 클래식한 장르로 인식 하게 되었고 이는 곧 전통과 위엄을 갖추기도 하였다. 미술가들의 마지막 성역이자 권위적 성격을 가진다.

미술가적 노동을 하는 이들은 진득하고 끈기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몇일 동안이나 한자리에 앉아서 같은 이미지를 구현 해야 하는 작업 방식과 가장 잘 어울리기도 한다. 이들은 잘 다듬어진 칼 같은 성격을 가지기도 하는데 섬세한 성향 탓에 예민한 감각이 활성화 되었기 때문이다.  대인 관계가 깊지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이거나 비지니스적인 관계가 많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도 못한다. 이들 중의 몇몇은 방탕아적 기질을 가진 이들도 있는데 주로 중독 되는 것들에 대해 상당히 연약하게 무너지기도 한다. 미술가적 창작 작업을 하는 이들의 성향상 단명하기 딱 좋은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이 기점을 넘어선 작업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장인이니 거장이니 하는 타이틀을 붙여 주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확고한 분야가 뒷바침 되기 때문에 권위적이거나 강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거나 타인을 평가 하기도 하지만 환경과 상황에 따라평하는 기준이 바뀌는 모순도 가지기도 한다. 절대 다수의 지지 때문에 그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사생활에 대해 신비주의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이야기 되거나 코멘트가 따라 다니지는 않는다.

달리 말하면 가장 작품을 작품 답게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 모호함의 당위성.

 이런 분류법은  극히 몇 몇 나라에서 맹신하는 혈액형별 성격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시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들이 창작 작업을 하는데 있어 경험하게 되는 외줄타기를  좀 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생명선이 된 것은 사실이다. 

많은 아티스트 멘토링을 자처하는 책들이나 프로그램들 중 새겨 들을 말은 거의 없지만 하나 같이 이야기 하고 이미 창작자 스스로들이 알고 있는 것은 ‘단정 되어지는 것은 없다’ 라는 것인데,  이것은 작업을 할 때 보다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에 있어서 더욱 확신을 가지게 하는 생각이다. 

어떤 것을 선택 하는 것만으로 창작자로서의 삶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의 사람과 가장 달라야 하는 창작자 들이 가장 대중적인 신데렐라 판타지를 꿈꾸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자신의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에서 시작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평가를 듣고 인정을 받는 과정은 다른 직업군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다만 인정의 기준이 스스로가 정한 것에 기준을 두고 확신을 가져야만 되는 것이 창작자들에게 순수성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 해야만 하는 “예술가”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수성이다. 

단정 되어지는 것은 없다는 정의는 또한 스스로에게 적용 하여 스스로의 작업에 있어 비겁하지 않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더불어  스스로로 하여금 자신만의 철학과 정의를 세울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 할 수 있다. 더 이상 스스로를 모짜르트 옆의 살리에르가 아닐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획일성을 경계하는 것이 창작자가 가져야 하는 본능이다. 

  • 살아남기.

흔히 미술 대학교를 입학하고 처음 접하게 되는 주제가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과 타인과의 소통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예술가가 하는 역할에 대한 정의를 배우는 시간이 된다. 아쉬운 것은 대다수의 교수들은 이런 의도를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지도 않고 우습게도 본인들 스스로도 이런 것들을 잊어 버렸거나 심지어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생들이 선생님들이나 선배들에게 궁금한 것은 어쩌면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예술가라는 직업을 통해 내가 행복해지거나 성공할 수 있을까? 인데 그들이 어릴 때 부터 학습되어진 예술가들의 이미지는 병에 걸리고 굶주리고 배신 당하고 요절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예술가적 삶의 표상이 되어서 살아 남아 유명세를 탄 예술가들을 동경 하면서도 연예인 화 시켜 부정적인 느낌으로 두 가지의 삶에 있어서 자신은 어느 쪽일까 라는 불안에 떨고 만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란 드러 내고 알아 보면 타인과 다른 것에서 오는 걱정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기준으로 어떤 선택이 좋은 것일까 하고 저울질 하는 것이 스스로를 불행 하다고 착각 하게 한다. 

대학을 다닐 때 한 교수님의 말씀 중 감사한 말이 하나 있는데, “예술을 잘 하는 것 보다 예술적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가르침이었다. 이것은 스스로로 하여금 가지고 있던 많은 생각들을 깨고 내려 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순수 예술을 지향 하는 삶에서 더 이상 먹을 거리를 궁리 할 필요 없이 먹을 거리를 마련 하는 방법은 따로 공부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오히려 작업하는데 있어 모티브가 되는 경우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작업 과정에 있어 더 이상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게 되고 살아 가는데 있어서 행복의 보루가 창작 활동이 되었다. 스스로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으며 타인의 평가에 대해 관대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단정 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앞서 이야기 했던 구현화와 우연성, 클레식한 작업 방식과 성향을 내가 만난 작업자들에게 느끼고 배우며 내 것으로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다.

바스키야, 반 고흐면 어떻고, 앤디 워홀, 피카소가 아니면 또 어떤가 모두가 그들을 사랑하지도 않고 또한 모두가 비난 하지도 않는다. 그들이야 말로 가장 스스로를 예술가적 삶을 살다간 이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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